우리가 용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 것은 약 1000년 전…… 성도 이슈가르드가 세워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먼 옛날 남쪽 평지에 살고 있던 우리의 선조는 전쟁신 할로네의 계시를 받은 자, '토르당'의 인도로 약속의 땅…… 커르다스 중앙고지를 향해 고향을 등졌지.
긴 여정 도중에 그들은 깊고 험난한 골짜기에 이르렀어.
토르당이 골짜기를 건너기 위해 다리를 놓으려 했을 때 '니드호그'라는 이름의 용이 갑자기 그들을 덮쳤어.
용과 그 용에 홀린 자들의 공격으로 토르당은 목숨을 잃었으나 그의 아들 '할드라스'가 창을 쥐고 반격에 나서 니드호그의 안구를 도려내며 물리쳤지.
그때 도려낸 안구가 이슈가르드의 보옥 '용의 눈'일세.
이 눈은 강대한 드래곤족의 힘의 원천을 품고 있어 심약한 자가 건드리면 용에게 홀리고 만다고 하지.
'용의 눈'을 만진 할드라스도 순간 자아를 잃을 뻔했으나 '정의로운 마음'으로 이를 이겨내고 그 몸에 '용의 힘'을 품었네.
……그리고 최초의 '푸른 용기사'가 되었지.
'용의 힘'은 사실 경계하고 기피해야 하는 것이지만……
당시 용장군 할드라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해.
성도 이슈가르드에 바치는 '정의로운 마음'이 존재하는 한 '푸른 용기사'는 결코 자아를 빼앗기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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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용의 눈'이 '사룡 니드호그'의 안구라고 말한 것 기억나나?
우리의 옛 영웅 할드라스가 그것을 도려낸 거라고 했었지.
자네한테는 신화나 전설처럼 느껴졌을지도 몰라.
대부분의 모험가가 드래곤족을 직접 본 적조차 없으니까.
……그러니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도 모를 거다.
사룡 니드호그는 실제로 존재해.
이슈가르드의 긴 역사 속에서 놈은 여덟 번 깨어났지.
그때마다 이슈가르드의 땅 위에 수많은 피와 눈물이 쏟아졌어.
다음 시련을 시작하기 전에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니드호그가 마지막으로 깨어난 것은 스무 해 전…….
드라바니아 땅에서 백 년 만에 깨어난 사룡 니드호그가 커르다스를 덮쳤지.
놈은 닥치는 대로 마을을 파괴하고 불바다로 만들었어.
놈의 광기에 휩쓸린 것인지……
다른 드래곤족도 차례로 눈을 떠 수많은 용의 무리가 순식간에 이슈가르드의 하늘을 뒤덮었다.
태양은 가려지고 짓누르는 듯한 어둠이 이슈가르드를 삼켰어.
아직도 눈에 선명하군. 하늘을 태우던 시뻘건 불꽃이…….
'푸른 용기사'였던 내 앞에서 무수한 생명이 화염 속에 사라졌지.
……신에게 기도할 틈조차 없었어.
사룡은 나를 놀리듯 날아올랐고 나는 쫓아가기 급급했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공방이 끝난 것은……
사룡이 깨어나고 사흘째 되는 밤이었지.
커르다스 외곽의 작은 마을에서 마침내 놈과 대치한 나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눈동자가 없는 그 눈구멍에 창을 찔러넣었어.
사룡은 길길이 날뛰었고 그 기세에 나는 땅에 처박혔다.
하지만 놈은 발톱을 들어 나를 찢어놓는 대신……
날개를 펼쳐 그대로 물러갔네. 사흘에 걸친 싸움이 끝난 거지.
수많은 동료와 죄 없는 시민들이 희생당했어…….
나 역시 그 싸움에서 '용의 힘'을 잃고 말았지.
그리고 사룡이 마지막으로 습격한 마을 '펀데일'에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 한 명만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게 바로 내 제자 에스티니앙이었어.
어린 나이에 외톨이가 된 그를 제자로 거둔 것은 '펀데일'을 지키지 못한 내 죄책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절대로 그 악몽이 되풀이되어선 안 돼.
우리는 드래곤족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빼앗긴 '눈'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는 보고를 성도에서 받았네. 니드호그가 눈 뜰 날이 다가오는 걸지도 몰라.
요즘은 드래곤족도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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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리크: 그렇다면 이제 '푸른 용기사'에게 전해지는 비기를
전수받기 위한 마지막 시련을 내리겠다.
하지만 그전에…… 자네에게 고백해야 할 일이 있어.
한때는 나도 '푸른 용기사'였다고 말한 적이 있지.
그리고 20년 전 사룡과의 싸움에서 '용의 힘'을 잃었다고.
실은 그게 아닐세…….
나는 '용의 힘'을 잃은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직접 버렸어.
……20년 전, 눈구멍에 창을 찔러넣은 나를 사룡이 다른 한 눈으로 가만히 응시했을 때……
갑자기 아찔할 정도로 광대한 감정이 나를 덮쳐왔다.
증오. 슬픔. 그리고 연민이 뒤섞인……
뭐라 한마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이 나를 한없는 나락의 끝으로 떨구려 하고 있었어.
'푸른 용기사'가 지닌 '용의 힘'은 드래곤족이 보내는 감정에 쉽게 공명하기에 자칫하면 용과 나를 동일시하여 자아를 잃을 위험성이 있지.
사룡에게 홀리지 않으려면 내 스스로 '용의 힘'을 버릴 수밖에 없었어.
그로 인해…… 간신히 용의 지배에서 벗어났고 크게 다친 니드호그는 그대로 '펀데일'을 떠났지.
하지만 남은 드래곤족들은 계속 그곳에서 날뛰었어.
그렇지만 '용의 힘'을 잃고 무력해진 나로서는 죽어가는 펀데일 사람들을 구할 수 없었다…….
알베리크: 어린 에스티니앙을 구해낸 것이 고작이었지…….
이건 에스티니앙은 모르는 사실이야.
에스티니앙이 그랬지.
자신의 복수가 곧 성도를 지키는 것이라고…….
하지만 '약자를 지키기 위한' 정의의 힘과 '복수를 하기 위한' 증오의 힘은 결코 같을 수 없어!
……녀석의 마음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흔들리고 있다.
나는 그게 걱정돼.
에스티니앙을 만나거든 말해야겠어.
사룡과 싸우려 한다면 먼저 '용의 힘'조차 버릴 수 있는 각오를 하라고.
'용의 힘'은 말 그대로 드래곤족의 힘.
창에 맹세한 정의가 흔들리는 순간, 용에게 홀린다…….
결코 잊어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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